증심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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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증심사천(광주광역시 일대)
주제어 증심사천, 하천/호수(광주), 신림골, 광주천, 증심사계곡, 허백련, 배고픈다리, 홍림교
증심사천원지교 위쪽으로 작은 주택들이 벽을 기대고 선 모습증심사천~원지교 위쪽으로 작은 주택들이 벽을 기대고 선 모습
 증심사천은 무등산 새인봉과 중머리재 북서쪽 골짜기인 신림골에서 발원하여 광주 동구 지역을 흘러 광주천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신림골에서 발원한 이후 덕산골의 물이 증심사천에 합류하고, 빈대실골과 금성골의 물을 더해 서쪽으로 흘러, 동조골 및 가리지골의 물을 더하여, 동부 학동 인근을 흐르다 원지교 아래에서 광주천과 합류한다.

 증심사천의 상류 지역은 전형적인 계곡하천으로 한적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1972년 무등산 도립공원 지정 이후 개발된 증심교 아래부터는 시끌벅적한 관광지의 모습을 보인다. 특히 몇 년 전까지 증심교 아래의 계곡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천변과 산비탈에 갖가지 음식점 등이 들어서 혼란스러운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지금은 정비되어 깔끔해졌지만, 과거의 위치보다 내려와서 증심사주차장 인근에 번화한 관광지가 형성된 것일 뿐, 번잡한 모습은 크게 변화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한편, 증심사천이 흐르는 증심사계곡에는 증심사를 비롯한 수많은 사찰들과 함께 삼애다원, 의재미술관, 춘설헌 등의 의재 허백련과 관련된 장소들이 자리하고 있다. 이는 무등산의 다른 물줄기들과는 다른 증심사천 및 증심사계곡만의 독특한 인문학적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이곳은 백제~통일신라 시대의 무진주 치소(治所) 및 고려와 조선 시대의 읍성에 거주하던 옛사람들의 생활공간과 위치상 가장 가까운 계곡이었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부단히 이곳을 찾았고, 이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인문학적 환경이 조성되었다.  

 계곡을 벗어나 광주 시내로 흘러내려온 증심사천이 광주천에 흘러들어가기까지 흘러가는 지역은 광주의 동구 학동 지역이다. 과거 이 지역은 광주 지역 내에서도 가장 못사는 지역 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증심사천 양쪽에는 작은 주택들이 빈틈없이 들어서 있으며, 하천으로 하수도가 직접 연결된 모습 등도 과거와 큰 차이는 없다.

 못살던 시절 이 지역의 모습을 보여주는 예로 ‘배고픈다리’가 있다. 동구 학운동을 흐르던 증심천에 놓인 이 다리는 본래 이름이 세월교(洗越橋)였으나, 그보다는 ‘배고픈다리’로 불렸다. 아마도 이는 다리를 지나면 나오는 지역이 온통 논과 밭으로 이루어지고, 가난한 이들의 판자집들이 천변으로 늘어서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당시에는 배고픈다리를 중심으로 안쪽과 바깥쪽의 두 지역이 명확히 비교되는 모습을 보였던 것 같다.

 배고픈다리와 관련된 설화에는 두 가지 정도가 알려져 있다. 두 가지 모두 다리가 만들어진 현대에 형성된 이야기라는 점이 매우 흥미롭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처음 돌다리 위에 드럼통을 쌓고, 그 위에 흙을 얹어서 다리를 놓아 이용했다. 이후 사람들의 잦은 왕래와 무등산 계곡에서 흐르는 급류에 의해 다리 중앙이 꺼졌는데, 어느 날 다리를 건너던 할머니가 허기에 지쳐 다리를 끝까지 건너지 못하고 다리 위에서 엎드려 죽었다.

 이 설화는 처음 만들어진 다리의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한편, 다리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고 있어 주목된다. 아마도 배고픈다리의 유래는 제대로 된 구조체가 아닌 드럼통을 편 철제판이 하중을 이기지 못하여 쳐진 것에서 유래한 듯하다. 여기에 허기에 지쳐 다리를 건너지 못한 할머니의 이야기가 덧붙여지면서, 배고픈다리를 건너야 했던 배고픈 이들의 이야기가 덧붙여진 것이다. 

 이와 함께 홍수로 인해 쓸려간 다리를 복구하기 위해 마을 주민이 모은 돈이 ‘백오푼’이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다리의 건립 시기와 관련하면, ‘푼’이라는 화폐 가치는 정확한 것이 아닐 듯싶다. 이는 배고픈다리라는 명칭이 생긴 이후 이를 지역 주민들이 이야기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덧붙여진 이야기로 보인다. 한편 백오푼은 그 화폐 가치가 매우 낮은 것으로, 이 역시 다리의 모습이 보잘 것이 없는 것임을 드러내는 작용을 한다.   

 배고픈다리가 있던 지역은 과거 홍림영리(虹臨永里)라 불린 지역이었으며, 이를 기록한 묘비가 발견된 이후로 새로 건립된 다리에는 홍림교라는 명칭이 붙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지역에 대한 기억을 간직한 광주민들은 홍림교라는 명칭보다는 배고픈다리라는 옛 기억을 떠올린다. 하지만 지금은 그 풍경이 많이 변하여 옛 다리의 별명은 더욱 이해하기 힘든 것이 되어가고 있다.

원지교의 합류부원지교의 합류부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박선홍, 『무등산』, 다지리, 2012.
-광주광역시(https://www.gwangju.go.kr/).
-수자원조사정보시스템(https://river.kwater.or.kr/).
-지역정보포털(http://www.oneclick.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