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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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광주천(광주광역시 일대)
주제어 광주천, 하천/호수(광주), 샘골, 영산강, 조탄(강), 조탄보, 용추계곡, 제2수원지, 용연계곡, 광주대교, 양동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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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천은 무등산 장불재 아래 800m 지점에 위치한 샘골에서 발원하여, 무등산 줄기와 광주 시내를 약 24.4㎞ 가량 흘러 영산강에 합류하는 지방 2급 하천이다. 길이도 짧고 수량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무등산에서 발원한 하천 중 가장 대표적인 하천이다. 

 하지만, 광주천이 현재의 이름으로 불린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옛 기록에서 광주천은 건천(乾川) 혹은 조탄(棗灘)이라 불렸다. 흐르는 지점에 따라서는 상류지역에서는 금계(金溪), 하류에서는 대강(大江), 혹은 한강(漢江)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 중 가장 일반적으로 쓰인 것은 조탄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 때문에 광주천에 설치되었던 대표적인 수리시설에 조탄보가 있다. 조탄보가 언급된 기록은 상당히 많은 편이기 때문에 광주천 역시 조탄이나 조탄강 등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무등산 샘골에서 발원한 광주천의 물줄기는 용추계곡을 흘러 제2수원지를 지나 용연계곡을 흘러온 물줄기와 만나 광주천 상류를 형성하게 된다. 이후 광주의 구도심과 신도심 사이를 서북 방향으로 흐르다 내방동 지역에서 만곡하여 이후 서남 방향으로 흐르다가 영산강에 합류한다.

 광주천은 광주 시내를 흐르는 무등산의 물줄기 중 거의 유일하게 하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광주천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광주를 대표하는 하천으로서의 의미가 부여되어 있기도 하다. 현재는 도심 개발과 함께 직선화되고, 인근에 형성되었던 모래톱 등이 모두 사라져 전형적인 도심형 하천의 모습을 하고 있다.

 무엇보다 상류 지역에 수원지나 저수지 등이 다수 건립되면서 수량이 감소하여, 인공적으로 정수된 하수처리장의 물이나 영산강물 등을 끌어올려 다시 방류하는 방법으로 하천의 모습을 겨우 유지하는 형편이다. 하천의 오염 문제는 광주천에 합류하는 각 지천의 경우 더 심각한데, 대부분의 경우 이들 지천들은 복개된 상태로, 도심 각지의 오물들을 광주천으로 옮겨오는 정도의 기능을 수행할 뿐이다.

 이 때문에 과거 1990년대 초반까지 광주천은 대한민국의 오염된 도시 하천의 대명사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이 시기의 광주천은 물의 흐름이 거의 정지하고, 각종 부유물과 쓰레기가 가득 차고 악취가 심하여 거대한 오물통과 같은 공간이었다. 

 이후 광주시와 시민들은 광주천을 살리기 위해 주변을 정리하고, 각 지천 및 광주천으로 유입되는 하수도의 처리 비율을 높이고, 부족한 유량을 하수처리한 물과 영산강의 물로 확보하는 등 하천 정화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결과로 지금은 물고기가 돌아오고, 하천 생태계가 어느 정도 복원되는 등 점차 하천으로의 기능을 회복하고 있다.

 그리하여 과거에는 가까이 간다는 것이 사실상 힘들었던 광주천 천변이 시민들이 여가를 보내거나 산책 등 운동을 하는 공간으로 변모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영산강의 지류 중 광주천의 오염도는 매우 높은 편이며, 일부 지천의 경우는 여전히 악취와 오물이 뒤섞인 하수를 합류 지점으로 흘려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므로 여전히 광주천의 생태 복원은 가야할 길이 멀다고 할 수 있다.

 한편, 광주천은 조선시대 읍성이 있던 구도심과 일제강점기 이래로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신도심 사이를 흐르는 하천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광주천은 광주의 도심 확장과 관련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는 하천이 되기도 했다. 일제강점기에는 광주천 건너편인 양림동을 중심으로 하여 외국인 선교사들이 활동하던 새로운 공간이 형성되었다. 이 지역에는 현재 호남신학대학, 광주석산고등학교, 수피아여자고등학교, 수피아여자중학교 등이 위치하고 있다. 이후 양림동을 중심으로 형성된 새로운 도심은 점차 확산하여 오늘날의 남구와 서구 지역의 일부를 형성하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비교적 넓어진 하천 폭 때문에 이를 건너는 다리가 여럿 만들어지기도 했다. 광주 서부와 동부를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바로 광주대교이다. 그리고 광주대교 아래의 천변에는 과거 거대한 모래밭이 형성되어 있었다. 신․구의 양 지역을 잇는 다리의 존재로 인해, 1900년 이후 이곳에는 백사장을 중심으로 하여 크고 작은 시장이 서게 되었다. 그 중 대표적인 시장이 양동시장이다.

 1930년대 잠시 천변을 벗어나 양동 지역으로 이동하여, 사정시장으로 개편되었던 이 시장은 1940년대에 다시 현재의 위치로 이동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양동시장의 전신이다. 해방 이후 광주시의 관영시장으로 운영되던 이곳은 현재는 민영화되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1972년에는 광주천의 일부 구간을 복개하여 상가가 들어서는 등 외형을 확대하여 광주의 대표적인 재래시장 중의 하나가 되었다.

 광주천에는 구도심과 신도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의 특성상 양 지역을 연결하는 다양한 다리들이 건립되었다. 광주천의 옛 다리에는 흙다리, 광주교(공원다리), 광주대교, 금교, 부동교, 발산교(뽕뽕다리), 대강교 등이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임시로 지은 다리에 가까워 현재까지 그 모습이 남아 있는 예는 광주대교나 금교 정도이다.

 현재 광주천을 가로지르는 다리에는 상류부터 용연교, 내지교, 남계교, 분산교, 녹동교, 소태교, 용산교, 태암교(신/구), 원지교, 방학교, 설월교, 방림교, 학림교, 남광교, 남광주철교(폐선), 학강교, 양림교, 금교, 서석교, 중앙대교, 광주대교, 천교, 태평교(양동복개쇼핑센터), 양유교, 양동교(신발산교), 발산교, 광천1교, 광천2교, 광암교, 동천교, 신유촌교, 유촌1·2·3교, 무진교, 상무교, 상무대교 등이 있다.

양동시장양동시장
광주대교광주대교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박선홍, 『무등산』, 다지리, 2012.
-수자원조사정보시스템(https://river.kwate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