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암제와 풍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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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풍암제(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 풍암정[광주광역시 북구 풍암제길(금곡동)]
주제어 풍암제, 풍암정, 하천/호수(광주-담양), 원효계곡, 풍암천, 증암천, 광주호, 김덕보, 「만영」, 이안눌, 안방준
풍암제풍암제
 풍암제는 원효계곡을 흘러온 풍암천을 광주 북구 금곡동 인근에서 제방으로 가로 막아 만들어진 저수지이다. 이 저수지는 인근 지역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1973년에 축조하였는데, 높이 14.5m, 길이 148m의 규모이다. 저수량은 11만t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다.

 풍암제에 모인 원효계곡의 물줄기는 저수지 수문을 통해 다시 흘러서 환벽당과 소쇄원 사이 정도에서 담양과 광주의 경계를 이루는 증암천(자미탄)과 합류하여 광주호로 흘러들어 간다.

 한편, 원효계곡이 풍암제와 만나는 지점에는 충장공 김덕령 장군의 동생인 풍암(楓岩) 김덕보(金德普, 1571~1627)가 세운 정자인 풍암정(楓岩亭)이 위치하고 있다. 그는 임진왜란 때에 큰형 김덕홍(金德弘, 1558∼1592)이 금산전투에서 전사하고, 둘째형 김덕령이 억울하게 역모에 휩싸여 죽고, 형수마저 정유재란에 왜군의 손에 의해 죽는 고통을 당했다.

 그리하여 김덕보는 세상에 대한 뜻을 버리고, 이곳에 풍암정을 짓고 숨어 살기로 결심하였다. 오늘날 풍암천・풍암제・풍암천 등에 들어간 ‘풍암’은 곧 이러한 김덕보를 기리기 위해 그의 호 ‘풍암(楓岩)’에서 따온 것이다. 다음은 그러한 김덕보가 자신의 뜻을 표현한 「만영(漫詠)」이라는 시이다. 
 
만영- 김덕보(1610년대 추정)

늙으막에 단풍나무 우거진 벼랑에 지은 두어 칸 정자,
바위 앞에는 우거진 대밭이, 뒤는 첩첩산중이네.
양지바른 정자는 삼동에는 따뜻하고 삼복에는 서늘해,
물가에 세운 높은 대(臺)는 한더위에도 춥구나.
불로초는 일찍이 신선들이 캐었고,
좋은 책은 모두 야인들이 빌어다 본다네.
이곳은 내가 깊이 안식할 곳이니,
신선 사는 바다와 산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이 시에서 김덕보는 깊은 안식을 위해 이 풍암정을 지은 것임을 밝히고 있다. 현재의 정자는 후대에 개축된 것으로 보이는데, 원효계곡 천변 옆에 높은 축대를 쌓고, 그 위에 다시 기단을 높인 다음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의 기와집을 올려 지은 형태이다.

 비록 세상에 대한 뜻을 접고 이곳에 은거하였던 김덕보였지만, 이 지역의 큰 선비로서 지역의 문사들과의 깊은 교유에는 힘을 쏟았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풍암정에는 이안눌(李安訥, 1571~1637), 안방준(安邦俊, 1573~1654) 등 당시 이곳을 찾은 문인들이 지은 시가 현판으로 제작되어 걸려 있다. 이를 통해 김덕보와 교유한 인물들의 면면을 알 수 있다. 

 풍암제의 축조로 정자를 둘러싼 지금의 자연환경은 그때와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커다란 바위 사이에 터를 잡아 높은 대를 올려 쌓은 빼어난 위치 선정과, 기품 있는 누정 건축 덕분에 이 풍암정 역시 자미탄 주변의 이름난 누정 못지않은 운치가 있다.

풍암정풍암정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농촌용수종합정보시스템(https://rawris.ekr.or.kr).
-누정문화답사(http://www.soswaewon.co.kr/).
-수자원조사정보시스템(https://river.kwater.or.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http://encykorea.aks.ac.kr/).
-한국의 고건축(http://ta.krp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