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적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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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화순적벽(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
주제어 화순적벽, 하천/호수(화순), 창랑천, 동복호, 전라남도 기념물, 적벽, 『삼국지』, 『삼국지연의』, 노루목적벽, 보산리적벽, 창랑리적벽, 물염적벽, 최산두, 조광조, 송정순, 물염정, 송시열, 정약용, 김병연(김삿갓), 망미정
화순적벽화순적벽
 화순적벽(和順赤壁)은 화순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진 창랑천 천변의 기암절벽이다. 1985년 동복댐이 확대 준공되면서 현재는 일부가 수몰된 상태이다. 1982년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나, 1985년 동복댐이 상수원보호지역이 되면서 외부인의 접근은 어려운 상태이다. 

 사실, 적벽(赤壁)은 후한 말엽에 벌어진 중국의 내전에서 발생한 유명한 전투 중 하나인 적벽대전(208)이 벌어진 장강변의 명승지이다. 적벽에 대한 기록은 중국의 정사 기록인 『삼국지(三國志)』, 소설인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등으로 한반도에도 이른 시기부터 전해졌다. 그래서 옛 문인들은 자신이 접한 하천변의 기암괴석군에 중국의 적벽을 빌려 적벽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곳으로는 단양과 화순의 적벽이 있다. 화순적벽은 동복댐 상류의 노루목적벽과 보산리적벽, 창랑리적벽, 물염적벽 등 총 네 곳의 기암괴석 절벽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순적벽을 적벽이라 이름 한 것은 기묘사화로 동복에 유배된 광양 출신의 신재(新齋) 최산두(崔山斗, 1482~1536)였다고 한다. 그리고 최산두가 적벽이라 칭한 곳은 현재의 노루목적벽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산두 이외에 화순 적벽을 찾은 조선의 문인에는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 1482~1519), 물염정(勿染亭) 송정순(宋庭筍, 1521∼1584),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1607~1689), 다산 정약용, 난고 김병연 등이 있다.

 최산두와 조광조, 송시열 등은 유배 중 혹은 적벽 인근으로 유배된 인물이며, 정약용은 화순현감인 아버지를 따라 화순에 살며 적벽 지역을 자주 유람하기도 하였다. 송정순은 벼슬에서 물러나 적벽 인근에 물염정(勿染亭)을 짓고, 은일거사로 살아간 사람이며, 그의 물염정은 이후 적벽과 함께 화순의 대표적인 명승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김삿갓으로 잘 알려진 김병연은 인생의 최후 시점에 이곳을 여행하였고, 적벽에 몸을 던져 생을 마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순적벽에는 이름난 누정 역시 여러 곳이었다. 이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에는 물염정(화순군 이서면 창량리), 망미정(望美亭, 화순군 이서면 장학리) 등이 있다. 물염정은 물염 송정순과 연관된 곳이며, 망미정은 정지준(丁之寯)이 본래 창랑과 적벽 사이에 처음 세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동복댐 수몰지구 내에 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망미정은 그 이후에 옮겨 세운 것이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박선홍, 『무등산』, 다지리, 2012.
-수자원조사정보시스템(https://river.kwater.or.kr/).
-호남기록문화유산(http://www.honamculture.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