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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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샘골(광주광역시 동구 용연동)
주제어 샘골, 발원/계곡, 장불재, 너덜겅, 광주천, 용추계곡, 제2수원지, 용연마을, 고경명, 「유서석록」, 냉천정
샘골 표지판샘골 표지판
 샘골은 장불재 등 무등산의 고산초원이 머금은 물이 너덜겅 사이로 흐르다 해발고도 800m 정도에서 솟아올라 형성된 무등산의 발원지이다. 작은 샘을 이루고 있으며, 강수량과 상관없이 물이 고여 있다.

 이렇게 샘골에서 시작된 광주천의 물줄기는 용추계곡과 용추폭포를 지나 제2수원지에 모이게 된다. 이후 제2수원지 아래로 흐르는 물줄기는 용연계곡과 용연폭포를 지나 흘러온 물과 용연마을 인근에서 합류하여 꽤 큰 물줄기를 이루어 광주천이 된다. 발원지인 무등산 800m 고지의 샘골에서 서구 유덕동에 위치한 하수종말처리장까지의 거리는 24.2㎞로, 이 지점에서 광주천은 영산강에 합류하게 된다.

 일제강점기까지 무등산을 찾는 시인묵객들은 정상을 찾은 뒤, 장불재의 고산초원의 장관을 둘러보고 샘골의 물을 마시며 쉬거나 무등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샘골을 찾아 휴식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1574년 이곳을 찾은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1533~1592) 역시 이곳에서 휴식을 취했다. 아래는 고경명이 당시의 산행을 기록으로 남긴 「유서석록(遊瑞石錄)」 중의 일부이다.
 
중머리재에서 산길을 따라 왼쪽으로 돌아서니 (…) 중략 (…) 임선생[광주목사 임훈(林薰)]이 먼저 냉천정(冷泉井)에 도착하여 뒤에 올라오는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샘물은 나무 밑 돌 틈에서 솟아 나오는데 그 찬 맛은 도솔천에 미치지 못하나 단맛은 그보다 더한 듯싶다. 때마침 모두 목이 말라 서로 서둘러 미숫가루를 타먹으니 좋은 간장과 단술[금장옥례(金漿玉醴)]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나 그 맛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으랴 싶다. 석양 무렵 입석암에 닿으니 양사기[楊士奇, 본명은 우(寓)로 중국 명나라의 대표적인 문장가 중의 한 명]의 시에 이른바 십육봉장사(十六峯藏寺)라는 곳이 바로 여기로구나 싶다.

 이를 통해 고경명 당대, 즉 16세기에 샘골이 냉천정이라 불렸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차가운 물이 나오는 우물이라는 뜻으로 시원하고 맑은 물이 매양 흘러나왔기 때문에 붙였던 이름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중머리재를 지나 앞서간 임훈이 냉천정에서 나머지 일행을 기다린 것으로 보아 당시의 산행, 즉 유산(遊山)에 샘골이 일정한 기점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에는 샘골에 무등산의 발원지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 있는데, 이 글의 “나무 밑 돌 틈” 등의 표현은 지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당시의 샘골 위치에 대해서는 현재의 샘골보다는 위쪽이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샘골 위․아래에는 현재 샘골로 불리는 지점과 유사한 물웅덩이들이 확인된다. 한편 샘골은 천곡(泉谷)을 일컫는 말로, 용추계곡 혹은 용추계곡의 상류가 모두 샘골 등으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고경명, 「유서석록」.
-조선, 「광주천의 시원을 만나다」, 『광주드림』, 2009년 11월 10일.
-수자원조사정보시스템(https://river.kwater.or.kr/).
-「유산기 콘텐츠」, 문화콘텐츠닷컴(http://www.cultureconten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