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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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원효사[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금곡동)]
주제어 원효사, 불교, 원효, 의천(대각국사), 「원효암중건기」, 신원, 회운, 내원(원담), 원효사 소조불상군, 삼신불, 『화엄경』, 최남선, 달마, 휴정(서산대사), 원효사 동부도
원효사 동부도원효사 동부도
 원효(元曉, 617∼686)를 개산조(開山祖), 중창주로 하는 사찰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 원효가 머물렀다는 뚜렷한 기록이 있는 분황사나 혈사를 제외하면 무등산의 원효사는 절 이름 자체에서 원효를 따른 대표적인 절이다. 원효는 종파에 얽매이지 않은 문헌학자이고 불교철학자이다. 특히 텍스트에 대한 객관적 분석으로써 불교의 갈등을 화해로 이끌었으며, 법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화엄으로 가는 교량을 만들었다. 11세기 후반 원효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이 원효를 ‘화쟁국사(和諍國師)’로 추봉하였다. 화엄종․법상종․천태종 3개 종단이 자신들의 교학적인 연원을 원효와 연결하였다.

 원효사는 1847년 쓰인 「원효암중건기(元曉庵重建記)」에 백제 때의 절에 원효가 머물면서 절 이름이 연유하였다고 하고, 고려 충숙왕대(1314~1339)에 화엄종 승려가 주석(駐錫)하면서 중창되었다고 한다. 1980년대 발굴조사 결과로는 통일신라 말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정유재란 때 모두 불에 타는 비운을 겪어 1609년에 석경이, 1636년에는 신원(信元)이 중수하고, 1789년 회운(會雲)과 1831년 원담내원(圓潭乃圓)이 중수하였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어 1954년경 중창하였다.

 1980년 발굴조사 시 대웅전 하층에서 고려시대 소조불상(塑造佛像)이 200여점이 넘는 잔편으로 발굴되었다. 발굴 보고서에 따르면 주존 좌우에는 사자를 탄 문수와 코끼리를 탄 보현이 협시(挾侍)하고 있었고, 다수의 소조불이 있었다. 형상이 온전한 두상은 35점, 불신은 40점 정도이다. 소조불상은 명상에 잠긴 듯 거의 감은 부드러운 눈매에 육계(肉髻)는 다소 높직하게 융기된 편이다. 추정컨대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하는 53불이 조성되었다. 53불, 천불(千佛) 등의 다불(多佛)은 불교의 삼신불(三身佛) 이론에 따른 화신(化身)이다. 『화엄경』 「화장세계품(華藏世界品)」은 시방 삼세의 무수한 시공간에 있는 무량한 부처에 대한 관상(觀想)을 제시한다.

 1925년에 최남선이 무등산을 여행하면서 원효사에 남은 명찰의 자취를 보았고, 영자전에는 달마(達磨), 원효, 청허[휴정(休靜)], 서월의 초상이 걸려있다고 하였다. 청허는 조선후기 불교중흥조인 서산대사(西山大師)이며 임진왜란 때의 승병장으로 호국(護國)과 강학(講學)의 종풍을 이끌었다. 서월은 대흥사의 제9대종사이다. 원효사 동부도(東浮屠)는 팔각원당형 구조에 비둘기와 거북이 그리고 용과 다람쥐 등 동물상이 표현되어 있다. 이는 18~19세기 서산대사 문도 승탑의 특징으로 해남 대흥사 서산대사의 승탑을 비롯한 그의 제자 소요대사의 법맥을 잇는 미황사 승탑에서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원효사의 사상적 맥이 유추된다.

 원효사는 무등산 북쪽지역을 대표하는 절이다. 원효사에 고려 전기 석탑편이 마당 한편에 있고, 북쪽지역 주변으로 신라하대 백천사지 오층석탑[광주지산동오층석탑(光州芝山洞五層石塔)], 고려전기 장운동오층석탑(국립광주박물관 소장), 서봉사오층석탑(전남대학교 소장) 등이 있어 원효사가 이 사찰들과 함께 활발한 종교 활동을 이끌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원효사 대웅전원효사 대웅전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국립광주박물관․원효사, 『원효사』, 국립광주박물관․원효사, 1983.
-문화재청, 『한국의 사찰문화재 광주광역시‧전라남도 1』, 문화재청, 2006.
-박선홍, 『무등산』, 금호문화, 1998.
-이경화, 「무등산 불교문화의 신앙적 양상과 교류」, 『역사학연구』, 45,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