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봉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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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서봉사지(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정곡리)
주제어 서봉사지, 불교, 『태종실록』, 자복사, 만연사, 총남종, 『호남읍지』, 임억령, 고경명, 이하곤, 의겸, 유일, 서봉사지 나한상, 고용후, 「서봉사나한전몽선대부」, 서봉사지 삼층석탑, 서봉사지 석종형부도, 증심사 석조관음보살입상
서봉사지서봉사지
 서봉사(瑞峯寺)는 무등산의 북록 담양군 남면 정곡리에 지금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겨우 석등부재와 괘불지주 일부만 남아 있을 뿐인데, 수십 채의 전각이 계곡을 메운 산중 큰 사찰의 모습은 어렵지 않게 상상된다.

 숲 속에 숨은 절 서봉사에 관한 기록인 『태종실록(太宗實錄)』 1407년 12월 기사에 의하면, 망하고 폐지된 절을 대신하여 명찰(名刹)로서 여러 고을의 복을 빌던 자복사(資福寺)를 지정했다. 무등산에서는 화순 만연사(萬淵寺)와 창평 서봉사가 총남종 소속의 자복사였다. 총남종은 조선 초기의 불교 7종파 중의 하나로 총지종(摠持宗)과 남산종(南山宗)이 통합된 것으로 추측된다. 1424년(세종 6년) 모든 종파를 선종과 교종의 양종으로 폐합할 때 천태종(天台宗)·조계종(曹溪宗)과 함께 선종으로 통합되었다.

 1899년 『호남읍지(湖南邑誌)』에 ‘서봉사재무등산동북경술화소(瑞鳳寺在無等山東北庚戌火燒)’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처럼, 서봉사는 경술년 불에 타는 비운을 맞이하였다. 경술년이 언제인지를 추정하면, 조선시대 서봉사 관련 사찰제영시문이 임억령(林億齡, 1496~1568), 고경명부터 이하곤(李夏坤, 1677~1724)에게서까지 찾아진다. 그리고 조선시대 최고의 화승 의겸(義謙)이 돌아가신 스승과 부모의 극락왕생을 위해 1740년에 서봉사 중불암 아미타도를 그렸다. 1774년에 서봉사의 원효탱이 원효사로 옮겨갔다. 한편 대흥사의 제12대종사 연담유일이 1779년 서봉사 주지로 있을 때 무고로 투옥되었으니 서봉사가 불에 탄 경술년은 1790년 혹은 1850년이다.

 서봉사 출토 나한상이 국립광주박물관에 있다. 나한은 부처의 제자이며 성인이다. 산스크리트어 아라한(Arahan)의 줄임말이고 복전(福田), 응진(應眞) 등으로 불린다. 그들은 윤회의 사슬을 벗어나 궁극적 해탈을 얻은 붓다의 가르침에 자신을 헌신한 이들이다. 서봉사 나한상은 예배자와 교감을 나누듯 따듯한 정서를 발산하고 있다. 고경명의 아들 고용후(高用厚, 1577~?)의 시 「서봉사나한전몽선대부(瑞峰寺羅漢殿 夢先大夫)」가 있다. 기암괴석에 앉은 증심사 오백전 나한상과는 대조적이다.

 폐사된 서봉사에서 1969년 고려 10세기 석탑과 조선후기 석종형부도가 전남대학교로 옮겨졌다. 증심사석조관음보살입상이 서봉사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김대현 외, 『국역 무등산유산기』, 광주시립민속박물관, 2010.
-이경화, 「무등산 불교문화의 신앙적 양상과 교류」, 『역사학연구』, 45,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