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의 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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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증심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무등산에 깃든 남도예술의 숨결 -
 
 광주와 담양, 화순군에 걸쳐 솟아 있는 무등산은 이 지역의 진산(鎭山)이다. 고려시대에 서석산(瑞石山)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 무등산은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부터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원효사(元曉寺), 안양암(安養庵), 개선사(開仙寺) 등의 불교유적과 고려시대와 조선시대를 거쳐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와 예술을 품고 있다.

 무등산의 불교미술은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유적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특히 통일신라시대 불교문화는 약사사(藥師寺)의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과 삼층석탑, 증심사(證心寺)의 철조비로자나불좌상(鐵造毘盧遮那佛坐像)과 오백전(五百殿) 앞 삼층석탑, 백천사지 오층석탑[광주지산동오층석탑(光州芝山洞五層石塔), 보물 110호], 868년에 건립된 연기가 새겨진 개선사지 석등(開仙寺址 石燈, 보물 제111호) 등과 원효사와 규봉암(圭峰庵) 등지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화편 등을 통해 탁월한 불교미술의 수준을 보여준다. 대개의 사찰이 무등산을 중심으로 자리하고 있어 본격적인 광주 불교문화의 전개는 무등산을 중심으로 펼쳐진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이 지역에는 당시의 활발한 불사활동을 보여주는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남아 있다.

 예향으로서의 광주는 무등산록에 위치한 춘설헌(春雪軒)의 의재(毅齋) 허백련(許百鍊, 1891~1977)과 우리나라 근대 서양화단의 선구자이며 ‘빛의 화가’로 불리던 오지호(吳之湖, 1905~1982)가 정점에 위치한다. 두 예술가가 남긴 뛰어난 예술 세계는 남도 화맥의 시작이자 뿌리였을 뿐 아니라 근대정신의 발로였다.

 의재 허백련은 조선 말기 소치(小癡) 허련(許鍊, 1809~1892)의 화맥을 계승하여 남종화(南宗畵)를 발전시켰다. 허백련이 1938년 결성한 연진회(鍊眞會)는 전통 회화의 현대적 전승이라는 목적의식을 가지고 많은 서화가들과 제자들을 배출했으며, 어느 지방보다 서화를 아끼고 좋아하는 풍조를 광주에 심어준 뿌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강(東岡) 정운면(鄭雲葂, 1906~1948), 목재(木齋) 허행면(許行冕, 1906~1966), 근원 구철우(槿園 具哲祐, 1904~l989) 등이 활동하면서 광주화단을 더욱 풍성하게 하였고 연진회를 통해 이어지는 광주 화맥에는 시대를 앞서간 이들의 창작열과 작가정신이 고스란히 배어 있어 예향 광주로서의 면모를 확립하였다.

 광주의 전통 회화의 맥이 오래된 반면 서구 양식의 회화는 근대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예술세계였다. 이 분야에서도 광주화단은 뚜렷한 지역적 특색과 발전을 보여주었다. 오지호, 양수아(梁秀雅, 1920~1972), 강용운(姜龍雲, 1921~2006) 등 일본 유학을 다녀온 화가들이 해방 후 광주에 정착하여 유화와 수채화 등을 소개하고 작품 활동을 하면서 서양화단이 형성되었다. 특히 오지호는 현대미술사적으로도 작가적 위상을 뚜렷하게 남기며 인상주의를 재해석한 맑고 밝은 빛과 색채로 남도의 풍경을 화폭에 담아냈다. 짧은 역사 속에서도 광주의 서양화단은 투철한 의식과 자기세계를 지닌 작가들의 활동을 통해 새로운 양식으로 예향의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된다.  

 이와 함께 1980년 5월항쟁을 통해 광주화단은 현대미술에서 현실주의적 참여미술을 본격적으로 실천하는 장이 되었다. 5월미술은 목판화와 걸개그림, 벽화 등을 통해 시민과 소통하였고, 현대의 암울하고 소외된 인간의 역사적 사건들을 화폭에 담으면서 문명비판과 함께 현실에 대한 야유와 풍자의 모습을 그려나갔다. 

 무등산 자락에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청자부터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를 제작했던 도요지가 남아 있고, 이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분청사기전시관이 있으며,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한 시민 강좌를 통해 일반인들의 미술활동 참여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무등현대미술관과 우제길미술관을 비롯한 크고 작은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이처럼 무등산 자락에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면서도 풍부한 미술문화가 한 곳에 펼쳐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