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재 허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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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무등산 일대
주제어 허행면, 한국화, 허백련, 허형, 조선미술전람회, 『하경산수-아지랭이』, 적취산장, 『홍도소견』, 『자원개발』, 춘설헌, 『물레방아』, 허대득, 허달용
허행면 『자원개발』의재미술관 소장 ⓒ 의재미술관허행면, 『자원개발』(의재미술관 소장) ⓒ 의재미술관
허행면 『물레방아』의재미술관 소장 ⓒ 의재미술관허행면, 『물레방아』(의재미술관 소장) ⓒ 의재미술관
 목재 허행면은 근현대 광주화단에서 실경에 근간을 둔 사생산수와 화조화에서 개성적인 면모를 보인 작가이다. 의재 허백련의 막내 동생이며, 광주 무등산 자락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으나 화재(畵才)를 펼치지 못하고 59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허행면은 형인 의재 허백련의 영향으로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어려서 부친으로부터 한학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강재(康齋) 박진원(朴晋遠) 선생에게 본격적으로 한문을 공부하고, 미산 허형으로부터 서예, 사군자 등을 사사받으면서 동양화의 기법을 익혔다. 광주고보 재학시절 일본인 교사로부터 데생, 수채화, 유화를 배우면서 그림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학교 졸업 후 진도군청에서 4년을 근무하다 31세 때 전남도청 서무과로 옮긴 뒤 연진회에 입회하여 본격적으로 그림공부를 시작했다. 허행면은 연진회에 들어간 지 1년만인 1939년 제18회 조선미술전람회에 『하경산수(夏景山水)-아지랭이』로 입선하였다.

 34세 때 도청을 그만두고 고흥에서 광산사업을 하기도 했으며 광주 사동에 화선지공장을 차린 적도 있다. 화선지 제조 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에 갔다가 돌아온 뒤 광주시 학동 무등산 아래 지봉 정상호의 집으로 거처를 정하여 서실 이름을 ‘적취산장(積翠山莊)’이라 정하고 그림에 전념했다. 

 허행면은 초기에는 형 허백련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나 ‘적취산장’이라는 당호를 쓰면서부터는 형의 화풍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의재 허백련의 산수가 사의적인 관념산수인데 비해 허행면은 실경에 바탕을 둔 사경산수를 추구하였다. 허행면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그려내는 것은 작가로서 표현의 자유이며, 전통만을 고수한 형식화한 화풍은 가능성이 무한한 남도인의 정서를 새롭게 일깨워주지 못하고 오히려 눈을 멀게 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고 했는데, 이는 남종산수를 바탕으로 하되 남도인의 본질과 정서를 담은 작품을 그려야 한다는 생각을 표출한 것으로 생각된다. 군방도에 있어서는 허행면 특유의 재치와 유머가 있어 그의 개성적인 면모를 보인다.

 허행면의 대표작으로는 시원하고 웅장한 맛을 전해주는 『하경산수』를 비롯하여, 홍도의 실경을 담대하고 큰 필치로 담아낸 『홍도소견(紅島所見)』 등이 있다. 

 허행면이 40대 고흥군 소재 금광 채굴 사업을 할 때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자원개발』은 실경의 맛이 잘 살아있는 작품이다. 섬세한 선과 필치, 그리고 온화한 채색을 사용하여 뛰어난 분위기 묘사로 마치 수채화 같은 느낌을 준다.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운 금광의 모습과 자갈, 짐을 나르는 인부 등이 사생을 거쳐 제작된 듯하다. 이 외에도 의재 허백련이 머물던 춘설헌 근처를 그린 작품으로 『물레방아』(1958) 역시 실경의 맛을 잘 살린 작품이다. 완숙한 사생과 능숙한 필선의 구사가 돋보인다. 

 허행면의 아들인 연사(蓮史) 허대득(許大得, 1932~1993)은 남화의 정통성을 강조한 의재 허백련에 근접하며, 손자인 허달용(許達傭, 1964~)이 화업을 이어가고 있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백계철, 『목재 허행면의 생애와 예술』, 조선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1987.
-전남대학교 박물관, 『남도 예술에 스미다 : 개교 60주년 및 역사관 개관 기념 교내 서화 기획전』, 전남대학교 박물관, 2012.
-허백련․전남일보사 편역, 『의재 허백련 : 작품과 생애』, 전남일보사, 19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