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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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광주광역시 북구 풍암제길(금곡동)]
주제어 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 미술관, 충효동 도요지, 청자, 분청사기, 백자, 인화문, 상감, 인화, 박지, 조화, 귀얄, 『세종실록지리지』, 오름가마
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 1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 (1)
 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은 충장사에서 광주호 방향으로 1㎞쯤 내려가다 보면 우측에 있다. 1998년 광주광역시가 충효동 도요지(사적 제141호)에 건립, 개관한 곳이다. 규모나 질적인 면에서 으뜸으로 청자 말기부터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서쪽 부지에 자리한 전시관에는 여기서 출토된 각종 분청, 백자, 그리고 찻그릇 도편을 전시하고 있다. 색다른 점은 도공의 이름이 새겨진 자기가 많다는 것. 이는 도자기를 조잡하게 만드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조치로 이러한 명문은 인화문에서만 보여 인화문은 관에 납품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 초기인 15~16세기에 광주 무등산 주변에서 생산되었던 분청사기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전시실은 건평 350㎡로 국립광주박물관에서 대여해 온 자기와 도구, 주변 수습자료와 복제품 등 200여점의 실물자료와 함께 상감, 인화, 박지, 조화, 귀얄 등의 제작기법이 자세하게 설명되어져 있고 가마시설을 재현한 미니어처는 관람객의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충효동 가마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운영되었던 곳으로, 청자부터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초기에는 분청사기만 만들다가 백자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같이 제작했으나, 분청사기의 무늬가 조잡해지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반면 백자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질이 좋아지고 생산량도 늘어 분청사기 가마에서 백자 가마로 성격이 바뀌었다. 백자는 크기가 작은 것이 주를 이루는데 비해 분청사기는 크고 작은 것 모두 있고, 종류도 접시․종지․잔․병․항아리․벼루․제기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된 무늬는 국화․나비․물고기․게․구름무늬 등이며 여러 무늬를 조합하여 그리기도 했다.

 가마의 구조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시설, 도자기를 집어넣는 번조실, 굴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둥근 무덤 형태가 연결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의 기록과 출토유물의 연도를 통해 1430년을 전후해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약 70∼80년간 자기제작이 지속되다가 16세기 초에 중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충효동 가마는 반지하식 오름가마로, 인화분청부터 귀얄분청 그리고 백자가 출토되고 있어 분청사기에서 백자로 변천되어 가는 과정을 알려준다. 이곳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는 인화기법으로 문양이 베풀어진 대접과 접시류가 대부분이다. 항아리, 병, 장군과 같은 대형의 기물에는 조화와 박지기법에 의한 모란, 물고기, 연꽃, 게, 가재, 오리, 소, 염소 등이 그려져 있다. 분청사기편에는 광(光), 광공(光公), 광별(光別), 무진내섬(戊辰內贍), 정윤이(丁閏二) 등의 글자가 있었다. 이들 글자는 사기장의 이름이나 납품 관서명, 제작지, 제작 시기 등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귀얄로 분장된 마상배의 바깥 면에 한글로 ‘어존’이 음각되어 있어 주목된다. 또한 초벌구이 된 성화명묘지(成化銘墓誌)가 출토되어 이 가마가 15세기에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 2무등산분청사기전시실 (2)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광주시사편찬위원회 편, 『광주시사』, v. 1~3, 광주시, 1979~1982.
-__________, 『광주시사 : 부록』, v. 1~2, 광주직할시, 2001.
-국립광주박물관 편, 『광주 : 유구한 문화의 도시』, 국립광주박물관, 2008.
-무등역사연구회, 『광주․전남의 역사』, 태학사, 2001.
-한국미술협회 광주광역시지회․한국미술협회 전남지회 편, 『광주․전남 근현대미술총서』, v. 1~3, 전일출판사, 2007, 2010,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