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사사 석조여래좌상, 삼층석탑

home home > 디지털아카이브 > 미술 > 약사사 석조여래좌상
관련장소 약사사[광주광역시 동구 증심사길(운림동)]
주제어 약사사 석조여래좌상, 약사사 삼층석탑, 불교미술, 약사사, 도윤(철감선사), 담진(혜조국사), 증심사, 항마촉지인, 우견편단, 팔각연화대좌
약사사 석조여래좌상약사사 석조여래좌상
 약사사는 무등산 새인봉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이다. 신라 문성왕 때 철감선사가 창건하여 인왕사(仁王寺)라 하였다가 고려 예종 때 혜조국사가 중창한 뒤 약사암으로 개칭하였다. 이후 법당 및 요사채 등을 중건, 중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증심사의 부속암자이다.

 약사사에는 석조여래좌상(보물 제600호)과 9세기 전반의 삼층석탑이 전해져 온다. 약사사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대좌를 포함하여 2m가 넘는다. 대좌위에 결가부좌를 하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手印)을 한 불상은 1856년 약사전 중수기록에 의해 약사여래라고 부르고 있다. 머리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있고, 이마가 크며, 아래 얼굴이 좁은 형이다. 옅은 미소를 띠고 있어 자비로운 인상을 준다. 어깨가 다소 처졌고, 가슴이 도드라지게 표현되었는데, 반면 허리는 상대적으로 가늘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우견편단(右肩偏袒)을 걸치고 있는데 옷 주름은 비교적 간단하게 처리했다. 수인은 왼손은 무릎 위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무릎에서 아래로 내린 항마촉지인이다. 대좌는 팔각연화대좌로 상․중․하대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연꽃과 우주 등을 표현한 9세기에 유행했던 형식이다.

 전체적으로 석굴암 불상과 유사하지만 둥글고 넓적한 얼굴에 가는 허리, 경직된 어깨와 불안정한 자세 등에서 통일신라말기 양식으로 추정된다. 

 삼층석탑은 대웅전 앞에 있는 석탑으로 본래 무너진 채 방치되어 있던 탑재들을 모으고 잃어버린 것을 보완하여 복원한 것이다. 현재 기단부는 단층기단으로 본래의 석재가 갑석밖에 없어 원형을 짐작하기 어렵다. 기단부의 네 모서리에 우주(隅柱)가 있고 옥개 부분의 마멸이 심하다. 초층 탑신의 모서리에 귀기둥을 새겼으며 2층과 3층은 복원할 때 새로 만든 것이다. 상륜부는 본래의 재료와 새로 만든 동그란 보륜을 포개어 복원하였다. 갑석과 옥개석의 형태로 보아 통일신라시대 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사 삼층석탑약사사 삼층석탑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광주시사편찬위원회 편, 『광주시사』, v. 1~3, 광주시, 1979~1982.
-__________, 『광주시사 : 부록』, v. 1~2, 광주직할시, 2001.
-국립광주박물관 편, 『광주 : 유구한 문화의 도시』, 국립광주박물관, 2008.
-무등역사연구회, 『광주․전남의 역사』, 태학사, 2001.
-성춘경, 『전남의 불상』, 학연문화사, 2006.
-한국미술협회 광주광역시지회․한국미술협회 전남지회 편, 『광주․전남 근현대미술총서』, v. 1~3, 전일출판사, 2007, 2010,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