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등산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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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아랫자락에 자리한 한국가사문학관 전경무등산 아랫자락에 자리한 한국가사문학관 전경
 무등산은 광주광역시, 전남 담양군, 전남 화순군 등 3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해발 높이는 1,187m로 호남의 진산(鎭山)이다. 1972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다가 2012년에 21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등산은 『삼국사기(三國史記)』에서 ‘무진악(武珍岳)’으로 처음 등장한다. 통일신라시대에 오악삼산신(五嶽三山神)에 대한 제의(祭儀)로서 무등산신을 위한 제전 형식을 소사(小祀)로 정했다는 내용이다. 이후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그리고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도 ‘무진악’이란 이름이 지속적으로 등장한다. ‘악(岳)’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경우에는 산이 대개 크고 영험함을 뜻한다. 이처럼 초자연적인 힘에 의지하여 나라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했다는 것은 무등산을 신적인 대상으로까지 높여 숭앙하였음을 뜻한다.

 이처럼 무등산은 호남의 진산으로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초월적인 신앙의 대상이 되어 정신적인 의지처가 되는가 하면, 이외에도 정치, 경제, 문화 등 생활 분야 전반에서 깊숙이 자리 잡아 호남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등산과 관련하여 현재까지 발견된 최초의 문학 작품은 「무등산가」이다. 「무등산가」는 『고려사(高麗史)』 「악지(樂誌) 속악(俗樂)」에 실려 전하는데, 아쉽게도 노래의 가사는 전하지 않고 배경설화만 남아 있다. 이 노래가 불린 것이 백제 때인지 고려 때인지 분명치 않지만 고대국가 때의 노래로 보는 것이 무방할 것으로 보인다. 「무등산가」 외에 「방등산가」, 「정읍」, 「선운산곡」, 「지리산가」 등 다섯 작품이 같이 실려 있는데, 「무등산가」가 성을 쌓아 편안한 삶을 추구한다는 점에 비해 다른 작품들은 남녀 또는 부부의 감정을 노래하고 있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 무등산과 관련된 문학작품은 계속 이어진다. 신라시대 이후로 이어진 운문 양식의 유산시(遊山詩)와 산문 양식의 유산기(遊山記)가 대표적이다. 또한 국문시가인 가사(歌辭) 부문에서 활발하게 창작되었다.

 한시(漢詩)의 경우 무등산을 오르면서 느꼈던 감흥 등을 시적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또한 무등산 주변에 산재해 있는 누정을 중심으로 창작된 연작제영시(連作題詠詩)를 꼽을 수 있다. 누정제영시(樓亭題詠詩)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하서(河西) 김인후(金麟厚, 1510~1560)의 「소쇄원사십팔영(瀟灑園四十八詠)」,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1496~1568) 등의 「식영정이십영(息影亭二十詠)」,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1533~1592) 등의 「면앙정삼십영(俛仰亭三十影)」 등이 있다. 한시로는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의 「등무등산(登無等山)」,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등서석산(登瑞石山)」 등이 있다. 이 밖에 16세기 후반 무등산 주변 계곡에서 한 여름의 더위를 씻기 위해 모였던 선비들이 시회(詩會)를 벌인 상황을 목판으로 새긴 『성산계류탁열도(星山溪柳濯熱圖)』가 있다.

 한시 창작은 일제강점기 때도 계속 이어져 1942년 광주의 유림들 132명이 무등산에 올라 차운(次韻)하여 칠언절구(七言絶句) 132편을 남겨 이를 출판하기도 하였다. 이로 보아 무등산은 그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많은 시인묵객으로부터 사랑받았음을 알 수 있다.

 무등산에는 ‘무등(無等)’이라는 이름이 말해주는 것처럼 무등산 전체가 불국토로 연상될 만큼 많은 사찰이 존재했다. 현재는 증심사(證心寺), 원효사(元曉寺), 규봉암(圭峯庵) 등이 남아 있으며, 이들 사찰을 소재로 한 사찰제영시(寺刹題詠詩)도 무등산 문학의 주요한 자원이다.

 이름난 산에는 이름난 인물이 상응하는 것처럼 옛사람들은 무등산 유람을 통해 다양한 문학작품을 남겼다. 이를 유산기라는 문학양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현재 남아 전하는 유산기는 약 20여 편에 이른다. 14세기 인물로 추정되는 권극화(權克和)의 「서석규봉기(瑞石圭峯記)」가 가장 앞선 시기의 작품이며, 그중 백미(白眉)는 조선 중기 때의 고경명의 「유서석록(遊瑞石錄)」이다. 이 작품은 질과 양면에서 풍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밖에 정약용의 「유서석산기(遊瑞石山記)」 등이 있으며, 근대 이후에는 최남선(崔南善, 1890~1957)의 『심춘순례(尋春巡禮)』, 이은상(李殷相, 1903~1982)의 「무등산기행」 등이 있다. 대부분 무등산의 영험함과 정상 삼봉에 자리한 돌기둥에 대한 예찬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문시가로는 무등산 주변 풍경을 노래한 가사가 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1493~1582)의 「면앙정가(俛仰亭歌)」, 송강(松江) 정철(鄭澈, 1536~1593)의 「성산별곡(星山別曲)」 등이 있다. 한문학 중심 가운데 순수 우리말로 창작된 가사작품이 보석처럼 존재하고 있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문학에서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의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는 갑오경장(甲午更張)이 있었던 1894년 이후 무등산과 관련된 문학작품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이는 아직 발굴되지 않은 작품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전 시기와는 양적인 면에서 매우 뒤처지고 있는 현실이다.

 소설에서는 주로 무등산을 공간적인 배경과 소재로 한 작품은 더러 있으나 이병주의 『지리산』,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같은 대하소설류의 작품은 아직까지 출현하지 않고 있다. 언젠가는 『무등산』이라는 대하소설이 출현하기를 기대한다.

 현대시 부분에서는 해방 이후에 다수의 작품이 출현하기 시작한다. 김현승의 「산줄기에 올라」, 서정주의 「무등을 보며」를 시작으로 1980년대에는 우리 현대사의 크나큰 아픔인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실을 온몸으로 고발하며 노래한 김준태의 「무등산」을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현재에도 많은 시인들이 무등산을 소재와 주제로 한 다양한 작품들을 다수 발표하고 있는데, 이는 무등산이 호남의 진산으로서 생활 곳곳 깊숙이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