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사와 관음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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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원효사[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금곡동)], 관음암[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금곡동)]
주제어 원효사, 관음암, 불교건축, 「원효암중건기」, 원효, 「원효암중수상량문」, 원효사 소조불상군, 원효사 동부도
원효사 대웅전과 석탑원효사 대웅전과 석탑
원효사 근방에 위치한 관음암원효사 근방에 위치한 관음암
 원효사는 무등산 북쪽 의상봉과 마주하는 원효계곡에 위치하고 있다. 원효사의 창건은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의 「원효암중건기(元曉庵重建記)」에 기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창건설로는 신라 법흥왕(500~539), 원효국사(617~686), 그리고 고려 충숙왕대(1314~1339)의 창건과 중건설 등이 있다. 그러나 1980년 실시된 발굴조사에서 수집된 출토유물을 보았을 때 창건시기를 신라말기로 보고 있다. 원효사의 창건내력을 자세하게 적은 기록으로는 1637년(인조 15년)의 『불상기(佛像記)』, 1641년(인조 19년)의 「법당중창기」, 1847년(헌종 13년)의 「원효암중건기」, 1894년(고종 31)의 「원효암중수상량문(元曉庵重修上梁文)」 등이 있다.

 이를 보았을 때 원효사는 통일신라 말기에 소규모 암자로 이뤄졌다가 고려 충숙왕 때 대규모의 사찰로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조선조의 정유재란 때에는 절이 모두 전소되었는데, 1609년(광해군 1년)에 석경스님이 중창 복원하였고 이후 여러 번 중수되었다. 원효사 건물은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에도 지속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대부분 전소되었다. 현재의 사찰은 1977년에 신법타(申法陀)스님이 부임한 이후 1980년부터 1984년까지 중창․복원한 것이다. 즉 현재의 원효사 가람은 모두 근래에 새로 만들어진 것들이다. 

 원효사의 주요 유물로는 발굴조사 때 출토되어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된 각종 소조불상(塑造佛像)과 동경, 금동소불이 있고, 경내에는 강희년명(康熙年名) 범종, 동부도(東浮屠), 오지호(吳之湖) 탱화, 석탑과 석등 파편 등이 남아 있다. 이 유물들 가운데 금동불과 기와조각은 통일신라의 것으로, 다른 것들은 고려말기나 조선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유물에서는 원효대사에 의한 창건과 연대를 뒷받침할만한 고증자료는 볼 수 없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과 우측에 위치하는 개산조당(開山祖堂)과 무등선원, 요사채, 회암루 등이 있다. 이중 대웅전은 전형적인 정면 3칸, 측면2칸의 다포양식이며, 팔작지붕이다. 요사채인 무등선원에는 원효사 범종이 보관되어 있다.

 원효계곡의 원효사 바로 아래에는 관음암이 위치하고 있다. 관음암은 원효사에 속한 암자였으나, 1975년 성호(性昊)스님에 의해 별개의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주요 건물로는 대웅전과 극락보전,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좌측의 자연암반에 새겨진 미륵불이 있고 경내에 삼층석탑과 석등이 있는데, 이들은 근래에 부가된 것들이다. 극락보전 촤측에는 자승당 단암선사(慈昇堂 檀庵禪師)의 사리탑이 남아 있다. 그리고 관음암과 원효사로 올라가는 도로변에는 어사 민달용(閔達鏞)과 관련된 어사바위가, 그리고 이에 대한 전설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광주직할시․향토문화개발협의회 편, 『무등산 : 문화유적조사』, 광주직할시, 1988.
박선홍, 『무등산』, 다지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