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봉암과 석불암

home home > 디지털아카이브 > 건축 > 규봉암과 석불암
관련장소 규봉암(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석불암(전라남도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
주제어 규봉암, 석불암, 불교건축, 고경명, 「유서석록」, 김생, 『신증동국여지승람』, 도선, 『동국여지지』, 의상(원교국사), 석불암 마애아미타불좌상, 소림정사
규봉암 관음전규봉암 관음전
석불암석불암
 규봉암은 무등산 동남쪽 기슭 해발 870m에 있는 규봉에 있다. 현존 무등산의 사찰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며, 정상의 후사면에 발달한 주상절리와 암경이 함께 어우러진다. 현존 사찰은 소규모 암자이며, 규봉암의 창건연대를 밝혀줄만한 구체적인 자료는 보이지 않고 있다. 단 규봉암을 언급하고 있는 사료는 다수 보이고 있는데, 조선 세종(1439) 때 전라감사를 지낸 최극화(崔克和)의 기록에서는 “의상대사의 창건”이라고 전하고 있으며,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 1533~1592)의 「유서석록(遊瑞石錄)」(1574)에는 “신라의 명필 김생(金生)이 쓴 '규봉암(圭峯庵)’이란 삼대자의 현판이 있었으나 절취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1530) 광산현 불우조에는 “규봉사(圭峯寺)는 무등산에 있으며, 절 곁에 삼석이 있어 (…) 그 이름을 삼존석이라 하고, 또 열 개의 대가 있는데 (…) 세상에 전하기를 도선이 이 대 위에 두루 앉아 송광대에서 산세를 본 다음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고 전하고 있다. 또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서도 이를 언급하고 있는데, 창건에 관한 의상대사설과 도선국사설이 있다. 또한 이외에도 대각국사 의천이나 보조국사 지눌, 진각국사 혜심, 그리고 김극기 등의 관련 기록에서 규봉사가 등장하고 있어서 규봉암은 늦어도 고려중엽에 규봉사라는 명칭으로 유존했으며, 아마도 통일신라 말엽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건조물들은 대부분 근래에 재창되었다. 현 규봉암의 건물로는 관음전과 삼성각, 요사채가 있는데, 한국전쟁의 전화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57년 이후부터 신축한 것이다. 그리고 규봉암 주변에서는 연화문 수막새와 명문 와편 등 다수의 기와편들이 수습되었다.

 석불암은 장불재에서 규봉암 가는 길의 지공너덜 윗길을 따라 가다보면 약 200m 지점의 암벽 전면에 위치하고 있다. 석불암의 현존 건물은 6․25 때 불탄 것을 재건한 민가형 건물이다. 암자 뒤편의 암벽에는 마애불이 조각되어 있는데 석조의 감실을 마련하여 불상을 보호하고 있다. 감실은 편암의 석리현상을 이용하여 방형구조의 실로 만들었으며, 다시 시멘트 구조물의 지붕을 얹었다. 감실의 좌우 벽면 하단에는 음각된 명문이 남아 있다. 기록에 의하면 1933년 담양국씨 일가의 시주로 조성되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각자되었다고 한다. 오른쪽 벽면에서는 소림정사(小林精舍)라고 새겨진 명문이 판독되어 석불암이 당시 소림정사라 불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광주직할시․향토문화개발협의회 편, 『무등산 : 문화유적조사』, 광주직할시, 1988.
박선홍, 『무등산』, 다지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