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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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충민사[광주광역시 북구 무등로(화암동)], 전상의장군예장석묘(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
주제어 충민사, 유교건축, 전상의, 안주성전투, 남이흥, 김준, 『구성집』, 『구성공실기』, 충민공전상의장군정려각유허비, 전상의장군예장석묘
충민사 영당 전경충민사 영당 전경
전상의장군예장석묘전상의장군예장석묘
 충민사는 조선 중엽의 무신 전상의(全尙毅, 1575~1627)를 배향해 세운 사우로, 1977년 전상의장군유적사업추진위원회의 노력으로 1982년 사우 건립에 착수하여 1985년에 완공됐다. 전상의는 1625년(인조 2년) 정묘호란 당시 구성부사 겸 좌영장으로 부임했다. 2년 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두 차례의 안주성 싸움에서 평안병마절도사 남이흥(南以興, 1576~1627), 안주목사 김준(金浚, 1582~1627)과 더불어 용전분투하여 적군을 격퇴시켰다. 그러나 3일 후 적병이 다시 몰려와 중영이 함락되고 남이흥, 김준이 모두 전사하자 전상의는 장졸들을 피신시키고, 홀로 백상루에서 남은 화살을 모두 쏘고 칼을 뽑아 스스로 목숨을 끊어 순국했다. 이렇듯 의연한 장군의 모습에 감동하여 오랑캐들은 시체를 함부로 다루지 않고 백상루 앞에 묻고 팻말을 세워두었다고 한다.

 현재의 충민사에는 영정과 위패가 모셔진 사우와 내삼문, 외삼문, 정려각, 유물관, 기념비가 있다. 유물관에는 장군의 유물 모조품(진품은 국립민속박물관 보존)과 교지, 완문(完文), 『구성집(龜城集)』(1735), 『구성공실기(龜城公實記)』(1855), 기록화 등이 보관․전시되어 있다. 정려각은 광주 동구 지원동 화산마을에 있었으나 6․25 전쟁 때 훼손되어 충민사를 중건하면서 이곳에 복원한 것이다. 정려각 내부에는 「충신증자헌대부병조판서겸지의금부사행통훈대부구성도호부사전상의지려(忠臣贈資憲大夫兵曹判書兼知義禁府事行通訓大夫龜城都護府使全尙毅之閭)」(1684)라는 명정 편액이 있다. 옛 정려각이 있던 지원동 화산마을에는 「충민공전상의장군정려각유허비(忠愍公全尙毅將軍旌閭閣遺墟碑)」(1983)를 세웠다. 그리고 입구에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무등산 북쪽 기슭의 광주 북구 화암동 평두뫼에는 전상의장군예장석묘(全尙毅將軍禮葬石墓)가 있다. 예장은 국가 공신에 대한 장례로서 국장 다음 가는 묘제이다. 현재 묘에는 전상의와 부인 풍천임씨 및 광산김씨가 합장되어 있다. 무덤은 직경 4.9m이고 밑에 호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1857년(철종 8년)에 세운 묘비가 있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광주직할시․향토문화개발협의회 편, 『무등산 : 문화유적조사』, 광주직할시, 1988.
박선홍, 『무등산』, 다지리, 2008.
전남대학교 박물관․전라남도, 『전남의 전통건축』, 전남대학교,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