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효동 정려비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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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충효동 정려비각(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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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효동 정려비각충효동 정려비각
 충효동은 배재 갈림길에서 금곡리를 지나 광주호 주변의 담양 남면 지곡리(지실마을)와 개울을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마을이다. 충효동은 옛적에 광주군 석저면의 성안 또는 성촌(城村)이라 했다. 성안이라 함은 마을이 성터 안쪽에 있었기 때문이다. 성안마을은 김덕령의 조부인 김문손(金文孫)이 1470년 무렵 서창에서 옮겨와 세거한 지역이다. 당시 이 지역은 낭장공파(郎將公派)가 주로 살았는데, 이 지역의 대표적인 문인인 사촌(沙村) 김윤제(金允悌, 1501~1572), 서하당(棲霞堂) 김성원(金成遠, 1525~1597) 등이 그 후손이다.

 충효동은 김덕홍, 김덕령, 김덕보(金德普, 1571~1627) 형제가 나고 자란 곳으로 생가와 문중 사당이 있으며, 마을 앞에는 정려비각이 있다. 정려비각 내에는 화강암으로 된 정려비가 있고, 비각 정면에 각자로 된 현판에 정묘어제윤음(正廟御製綸音)이 새겨져 있다. 그 내용은 1788년 정조가 김덕령 형제와 김덕령의 부인 흥양이씨의 충·효·열을 기려 마을이름을 ‘충효지리(忠孝之里)’라 하고, 표리비를 세우라는 어명을 내린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정려각은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비각 정면에는 광주광역시 기념물 제16호로 지정된 충효동 왕버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충효동은 민속신앙의 하나인 당산제가 지속적으로 연행되고 있어 민속 문화를 대표하는 중요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박선홍, 『무등산』, 다지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