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정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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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독수정[전라남도 담양군 남면 독수정길(연천리)]
주제어 독수정, 누정, 전신민, 정몽주, 이백, 산수원림, 풍수지리
독수정독수정
독수정 배면독수정 배면
 독수정(獨守亭) 원림은 고려말 서은(瑞隱) 전신민(全新民, ?~?)이 최초 조영한 것으로, 초창연대는 1390년 전후로 추정된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가 살해당하고 고려가 멸망하자 두문 72현과 함께 두 나라를 섬기지 않을 것을 다짐하고 담양에 은거하면서 이 정자를 지었다. 정자의 이름은 이백(李白)의 시에 나오는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은사의 고결한 뜻을 표현한 것이다. 정자가 퇴락하자 1891년(고종 28년)에 후손들이 중건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고 다시 1913년에 재차 중수하였다.

 전신민은 계곡물이 흐르는 남쪽 언덕 위에 정자를 짓고 독수정이라 하였으며, 후원에는 소나무를, 앞쪽에는 대나무를 심었다. 독수정의 좌향이 북향으로 되어 있는 것은 아침마다 북쪽의 고려 왕도인 송도를 향하여 배향하기 위함이다. 독수정은 자연림 속에 싸여있어 주변경관이 매우 아름답다. 구릉 위의 중간부분에 원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전경과 후원에 나무를 식재함으로써 폐쇄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전면의 경관이 자연계류와 트인 공간으로 되어있으나, 현재의 정자는 주변으로 높은 수림이 우거져 차폐되어 외부에 노출되지 않고 있다. 조경적인 측면에서 인공미가 적은 산수원림에 해당하며,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산수원림의 기법이 전남지방에 도입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조선초기의 원림 형태와 전남지방 별서의 변화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독수정 원림의 수경관 특징은 여타 원림과는 달리 조영의지의 표현방법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전남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원림은 수경관을 중심으로 공간을 형성하는데 반해, 독수정 원림은 자연 그대로의 지형과 산수를 통한 구성을 보이고 있다. 이는 산수원림의 시원적 형식이라 할 수 있는 것으로 시기상 고려 말부터 조영된 원림 형식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원림조영은 시대적 배경에 의해 폐쇄적 구조를 보이고 있으나 초기의 형태에서는 개방형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초기의 개방적 공간은 점차 조영자의 심적인 표현에 따른 주변의 다양한 식재를 통해 세상과 단절된 하나의 원림권역을 형성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수경요소로는 단지 전경의 자연하천의 계류와 계곡으로 형성된 작은 개울의 수공간을 차경하고 있다. 사상적인 측면을 보면, 풍수지리의 배산임수에 따라 안거의 장소를 택하고 있으며, 유교사상의 은일과 은둔에 따라 원림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전남대학교 박물관․전라남도, 『전남의 전통건축』, 전남대학교, 1999.
천득염․전봉희, 『한국의 건축문화재 9 전남편』, 기문당,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