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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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장소 송강정[전라남도 담양군 고서면 송강정로(원강리)]
주제어 송강정, 누정, 전라남도 기념물, 정철, 『사미인곡』, 『송강별집』, 죽록정, 『속사미인곡』, 「송강정유허수리시서」
송강정 정면송강정 정면
송강정 원경송강정 원경
 송강정은 담양의 녹죽과 창송이 만나고 있는 곳에 남아 있다. 송강정은 담양군 고서면 원강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 전라남도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송강 정철은 서울 출생으로 어렸을 때 을사사화로 피해를 입자 이를 피해 담양 창평에 정착했다. 송강의 맏누이는 인종의 숙의이고 막내누이가 계림군의 부인이었으나, 사화로 집안이 풍비박산 나면서 유랑길에 올랐다. 당시 정철의 나이는 10세였다. 아버지는 유배지로 보내졌고, 맏형은 귀양길에 죽었으며, 둘째 형은 사화에 환멸을 느껴 은거했다. 정철은 아버지의 귀양길을 따라 떠돌다 담양 창평에 정착하였는데, 이때가 정철이 16세 되던 해이다. 이후 정철은 김윤제의 외손녀와 결혼하고, 저명한 호남사림들에게 학문을 배우게 된다. 정철은 초기에 지실마을에 터전을 잡고 살았고, 이후 잠시 벼슬길에 올랐으나 당쟁의 소용돌이에 다시 낙향하여 이곳에 송강정을 짓고 은거하였다.

 이때 정철은 『사미인곡(思美人曲)』을 짓게 된다. 『송강별집(松江別集)』에 의하면 『사미인곡』 제작은 창평으로 돌아온 이후 4년 뒤에 이루어졌다고 한다. 『사미인곡』은 연군지정(戀君之情)을 노래한 것이다. 이 노래는 한 여인이 남편과 이별하고 사모하는 정을 읊은 것으로, 정철의 충정을 우회하여 표현한 것이다.

 송강정은 죽록정(竹綠亭)으로도 불린다. 정면에는 ‘송강정’이란 제액이, 그리고 측면에는 ‘죽록정’이란 제액이 각각 걸려 있다. 정자의 전면으로 죽록천이 흐르고 있고 시냇물 옆으로 죽록이 있었기 때문에 죽록정이라 불렸다고 한다. 또한 정자 앞의 강이 송강(松江)이어서 정철의 아호를 송강이라 하고 나아가 정자의 이름을 그처럼 명명한 것이라 추정된다.

 송강정의 건축적 구조는 정면3칸, 측면3칸으로 정면과 좌우측에 툇마루를 두었고, 중앙으로 실을 배치했다. 송강정의 건축은 송강의 6대손인 정제의 글에 의하면 정철의 나이 50세인 1585년에 이루어진 것이라 한다. 즉 이때는 『사미인곡』, 『속사미인곡(續思美人曲)』이 지어진 때이다. 현재 남아 있는 정자는 당시에 지어진 것은 아니고 후대에 새로 중창된 것이다. 이곳은 주인이 떠나면서 무너져 한때 그 터만 남았으나, 1649년(인조 27년)에 후손들에 의해 다시 중건되었다. 이 사실은 그해 10월에 6세손인 정제가 쓴 「송강정유허수리시서(松江亭遺墟修理詩序)」에서 확인된다.

 정자의 세부를 보면 기단은 장대석을 외벌대로 돌렸으며, 다듬어진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가구형식은 2고주 5량가로 평주와 고주 사이에 퇴보가 있다. 그리고 중앙칸에 우물천장의 반자를 두었다. 실의 구성을 보면 중앙과 좌우에 퇴칸을 두고 중앙에 실을 두었는데, 좌우정면에 띠살문을 두어 개방성을 높였다.

 
참고문헌 목록
참고문헌
김신중․박영주 외, 『가사 : 담양의 가사기행』, 담양문화원, 2009.
전남대학교 박물관․전라남도, 『전남의 전통건축』, 전남대학교, 1999.